2026 도동문학기행 — 안동 봉정사 · 병산서원
2026년 4월 12일(일) · 안동 봉정사 · 병산서원 — 도동시비동산 문우들과 함께
봄이 깊어가는 사월의 둘째 일요일, 도동시비동산의 문우들이 대구 동구 도동을 떠나 안동(安東)으로 향했다. 팔공산 측백수림 곁에서 늘 시(詩)와 돌을 가까이 두던 우리들이, 이번에는 두 산을 잇는 하루의 길에 올랐다. 천등산(天燈山) 자락의 사찰 봉정사를 잠시 들렀다가, 낙동강 굽이를 따라 병산(屛山) 아래의 병산서원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정. 도동의 시비(詩碑)가 돌에 새긴 노래라면, 봉정사는 나무 기둥에 새긴 기도였고 병산서원은 흙과 마루에 새긴 학문이었다. 같은 봄볕 아래, 세 자리가 가만히 마주 보는 듯했다.
1부. 봉정사 — 천등산(天燈山) 자락에서
안동 시내에서 북쪽으로 차를 돌려 한참을 들어가면 천등산 자락에 봉정사(鳳停寺)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能仁)이 종이 봉황을 접어 띄웠더니 이 산 중턱에 내려앉아 절을 세웠다는 전설에서 이름을 얻었다 한다. 절집 안 극락전(極樂殿)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가운데 하나로, 그 자체가 한 편의 단정한 시(詩)와 같다.

주차장에서 일주문 쪽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길. 작은 정자 앞에 일행이 모여 『도동시비동산 문학기행』이라 적힌 연둣빛 현수막을 펼쳤다. 새 잎이 막 돋아난 나무 가지가 사진 위쪽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추어 누군가 "도동!" 하고 외치자, 모두가 "시비동산!" 하고 답했다. 짧은 함성이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봉정사로 드는 길은 길지 않지만, 그 길에 정자 하나가 있어 발걸음이 한 번 머물게 한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 맞은편 능선의 부드러운 굴곡,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새의 울음 — 도동에서는 측백 잎이 이 역할을 한다면, 이곳에서는 활엽수의 새 잎이 그 일을 했다. 천년 사찰의 단청을 잠시 머금은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2부. 병산서원 — 병산(屛山) 자락에서
풍천면(豐川面) 쪽으로 차를 돌려 좁은 비포장길을 한참 들어가면, 낙동강이 한 굽이 휘감아 도는 자리에 서애 류성룡(柳成龍) 선생을 모신 병산서원이 단정히 앉아 있다. 사찰에서 서원으로 — 같은 안동 땅에서, 우리는 두 가지 다른 침묵을 차례로 만났다.
하나, 복례문(復禮門) 앞에서
서원 앞에 서니 복례문의 검은 기와가 흰 담장 위로 단정히 내려앉아 있었다. 예(禮)로 돌아간다 — 그 이름 그대로, 문턱을 넘기 전에 모두가 한 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 옛 건축이 사람에게 가르치는 첫 문장일 것이다.

봉정사의 일주문이 "잠시 마음을 비워 두고 들어오라" 했다면, 병산서원의 복례문은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들어오라" 했다. 두 문은 다른 말을 하지만, 결국 같은 자리로 우리를 이끌었다.

복례문을 들어서자 흰 담장과 돌계단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단정히 마주 서 있었다. 일행은 다시 한 번 둘러서서 사진을 남겼다. 햇빛에 마른 흙냄새,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낙동강 물소리 — 그 자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둘, 입교당(立敎堂) 마루에 앉아
마당 너머로 입교당의 너른 마루가 펼쳐졌다. 가르침을 세우는 집. 이름이 무겁지만, 막상 마루에 발을 올리니 햇볕에 잘 마른 소나무 향이 먼저 인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신을 벗고 마루 끝에 한 줄로 앉았다.

"여기 앉아 보니, 사오백 년 전 유생들도 우리처럼 다리가 저렸을까."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가 웃었다. 그러나 정말로, 마루 끝에 걸터앉아 마당 너머의 만대루(晩對樓)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라는 것이 한 겹씩 얇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동의 시비(詩碑) 앞에서 우리가 자주 느끼는 그 고요와 닮아 있었다.

한 분이 마당 너머를 가리키며 무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옆자리의 분들이 고개를 돌려 그 손끝을 따라갔다. 시(詩)는 종이 위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마루 끝에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 줄씩 슬며시 자라고 있었다.

셋, 만대루 — 산이 들어와 앉다
병산서원의 백미는 역시 만대루다. 일곱 칸짜리 누각, 기둥 사이마다 산이 한 폭씩 걸린다. 바람이 불면 낙동강이 누각 안으로 한 자락 들어왔다가, 다시 강 쪽으로 돌아나갔다.

늦게야 마주한다(晩對) — 두보의 시 한 구절에서 따왔다는 그 이름. 일평생 미루어 두었던 풍경을, 이제야 와서 마주 본다는 뜻으로 읽어도 좋겠다.
일행 중 한 분이 누각 난간에 기대어 병산을 가리켰다. "저 능선 좀 보이소. 시비동산 위에서 보는 팔공산하고 결이 다르지요?" 그러자 또 다른 분이 받았다. "팔공이 두텁다면, 병산은 펼쳐 놓은 두루마리 같지요." 그 한마디에 모두가 한참을 더 서 있었다. 시인은 굳이 시를 짓지 않아도, 풍경 앞에서 한 줄을 골라 읽을 줄 안다.

넷, 명품 돌레길 — 네 글자의 사색
서원을 나서 명품 돌레길로 접어들자, 길 옆에 검은 안내판 다섯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서애 선생의 학문을 네 글자로 풀어 놓은 사색 거리들이었다.

- 물아일체(物我一體) — 사물과 내가 한 몸이라는 깨달음
-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에 다가가 앎에 이르는 공부
- 학사위주(學思爲主) — 배움과 생각을 함께 두는 마음가짐
- 추공교월(秋空皎月) — 가을 하늘의 맑은 달처럼 흐림 없는 정신
도동의 시비(詩碑)가 시인의 한 줄을 돌에 새긴 것이라면, 이곳의 안내판은 학자의 한 평생을 네 글자에 응축해 놓은 셈이었다. 우리는 한 비석 한 비석 앞에 멈춰 서서,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5월을 코앞에 둔 사월의 햇빛이 비석 모서리에서 잘게 부서졌다.

돌아오는 길
해가 병산 능선에 걸릴 무렵, 일행은 다시 도동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낙동강이 길게 따라오다, 어느 굽이에서 슬며시 작별했다. 오전의 봉정사와 오후의 병산서원이 한 폭의 두루마리처럼 마음 안에서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
돌아오는 차 안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누구는 봉정사 정자 위로 떨어지던 새 잎의 그늘을 떠올렸을 것이고, 누구는 만대루의 일곱 칸 사이로 보이던 산을 다시 더듬었을 것이며, 또 누구는 추공교월 네 글자를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새겼을 것이다. 도동의 시비동산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비동산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오늘의 봉정사·병산서원처럼 읽힐까요."
그 말에 누구도 큰 소리로 답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측백수림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돌에 새긴 시(詩)는 쉬이 늙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 안동의 두 자리에서 보고 온 것처럼, 도동의 시비들도 오래오래 그 자리에 머물 것이다.
기록 · 도동시비동산 문학회 / 2026년 4월 12일(일) · 안동 봉정사 · 병산서원 · 사진 11장